본문 바로가기
life

THE LEGACY BEGINS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아기 상어’를 연주하고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사, 사진제공 | 더갤러리아

바라던 대로 많은 공연 스케줄을 열심히 소화해내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얼마 전에 참가한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선 반응이 엄청났다. 올해로 2년 차인데 소감이 어떠한지, 작년과 비교하면 어떤 점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윤성 트리오와 함께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에 참가한 작년엔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 객석의 1/3 정도가 차 있었다. 그러다 공연이 진행되며 관객 수가 점점 늘어나고 결국엔 꽉 찼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공연 시작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기고 처음부터 객석이 가득 차더라. 클래식 연주자로서 내 메인 분야가 아닌데도 우리 연주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했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다. 첫해엔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 주로 재즈 스타일로 편곡한 클래식 곡들을 연주했지만, 올해는 그런 부담이 훨씬 덜했다. 어차피 클래식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니 재즈 공연에선 재즈 본연에 충실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어 세트리스트에 보컬 곡도 많이 넣었다.

관객들의 호응도는 좋았나?(웃음)
완전히. 재즈 색소폰 연주자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와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싱글 음반에 수록된 ‘Just the Two of Us’를 연주했을 때 중간 부분에서 서로 따라 부르며 관객과 내가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다들 떼창을 해주시더라.(웃음) 클래식 공연 같은 경우엔 누가 표를 줘서 할 수 없이 와서 보는 사람들도 많고, 공연 중간에 나갈 수도 없지 않나. 그런데 서재페 같은 페스티벌은 다르다. 다들 그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1년 동안 기다렸다 오니까. 심지어 같은 시간대에 3~4곳의 무대에서 여러 뮤지션들이 공연하고 있는데, 이들은 그중에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와서 앉아 있는 거라 애초에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러니 공연 시작부터 다들 환호해주고, 나와 함께하고픈 마음이 온전히 느껴져 참 따뜻했다.

반소매 셔츠와 팬츠는 모두 벨루티 제품. 화이트 슬리브리스 티셔츠와 벨트, 워치,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피어싱은 본인 소장품.

  • 재즈곡을 연주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는 잘 없으니 레퍼런스를 참고하기도 쉽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사실 어릴 때부터 재즈를 좋아해서 트럼펫을 12년 정도 했다. 아직 클래식 연주자들에겐 어려운 숙제인 듯하지만, 다른 장르나 연주자들을 크리티컬한 자세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연주를 위해 재즈에 대해 파고들었던 게 클래식을 연주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클래식 음악은 이미 많은 분들이 연주해왔지 않나? 게다가 작곡가가 살아 있지도 않고. 몇 백 년간 수많은 연주자들이 똑같은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는데, 재즈곡을 연주할 때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마치 처음 연주하는 것처럼 순간에 충실해서 연습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하반기까지 공연이 엄청 많이 잡혀 있더라. 어느 하나 신경 쓰지 않는 무대가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기대되는 공연은 무엇인가?
    협연은 항상 중요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본업이 클래식 연주자인 만큼 나 자신이 대중에게 알려질수록 클래식 신에 누가 되면 안 되니까. 이 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돼야 하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본업을 잘 해낼 때 다른 장르를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대되는 공연은 아무래도 12월 25일에 열리는 내 단독 콘서트다.(웃음)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날 공연하는 건 처음이어서 더욱 기대가 된다.

    그레이 셔츠와 쇼츠는 모두 페라가모, 브라운 로퍼는 토즈, 이어 커프로 사용한 이어링은 쇼메. 안경은 모스콧서울 제품. 타이와 워치, 벨트,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피어싱은 본인 소장품.

  • 요즘 ‘나혼자산다’ 등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니 구의 일상을 자주 보여줘서 좋다. 동갑내기인 샤이니의 키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과 사귀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본인 스스로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원래도 제일 친한 친구들이 다 클래식 분야 밖의 사람들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내 세계도 넓혀진다는 말에 동의한다. 서로의 일이 겹치지 않으니 마음 편하고, 또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걸 최근 참 많이 느끼고 있다. 우선 얼마 전 우리 부모님이 방송에 출연한 것!(웃음) 처음 본방송 초반엔 ‘아 촬영한 게 이제 나오네’ 하고 보고 있다가 점점 ‘어? 우리 엄마 아빠가 왜 TV에 나오지? 진짜 신기하다!’는 마음으로 보게 되더라.(웃음)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운전 중 엄마가 “기범이(키) 그 친구 괜찮더라” 하시길래, 기범이한테 바로 전화해서 엄마를 연결해 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웃음) TV에서 봤던 사람들, 예를 들면 ‘나혼자산다’에 나오는 이장우 형, 기범이, 기안84 형이 ‘술 마시자’ ‘같이 운동하자’고 내게 연락해주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엄마랑 둘이 god 팬클럽인 ‘팬지(팬지오디)’였는데, 이젠 god 형들과 공연도 하고 곡도 써 드릴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 분야의 톱인 조수미 선생님과 종종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도 너무 신기하다. 역시 열심히 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화이트 톱은 골든구스, 버건디 컬러 와이드 팬츠는 질 샌더 바이 지스트리트 494 옴므, 안경은 젠틀몬스터, 링은 쇼메 제품. 슈즈와 워치, 브레이슬릿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피어싱은 본인 소장품.

  • 2020년 2월 1일,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직전 한국에 왔다고 들었다. 오자마자 힘든 상황이 이어졌으니 삶이 녹록지 않았을 거고. 만약 그때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미국에서의 조용한 삶이 펼쳐졌겠지. 내게는 ‘기회 설계도(Opportunity Tree)’라는 게 있다. ’어떤 기회를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더라. 거기엔 운도 따른다고 생각하고. 클래식 음악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오픈돼 있는 연주가가 아직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럴 때 내가 한국에 온 것도 운인 듯하다. 내가 바라는 건 내 활동으로 인해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거다. 그래야 클래식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고, 클래식 연주자들도 먹고살 수 있게 된다. 그간 활동하며 들었던 가장 감사한 말은 “대니 구 덕분에 나도 클래식 공연에 가고 싶어졌어요”라는 것이다. 그럴 때 ‘아, 내가 조그만 변화를 만들고 있구나’라고 느껴진다. ‘핑크퐁 클래식 나라’에 출연해 춤추고 연주한 건 이러한 기회들을 통해 클래식 뮤지션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아이들에게 클래식의 매력을 편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그런 연결고리가 되려는 클래식 연주자로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니, 내겐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달려야 하는 시기이다.

    베이지색 니트 카디건은 산드로, 팬츠는 골든구스, 브라운 피셔맨 샌들은 토즈, 워치는 몽블랑 제품. 스트라이프 이너 톱과 네크리스, 이어 커프,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피어싱은 본인 소장품.

  • 클래식 연주자들을 인터뷰해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전공자들이 있었나 싶어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클래식 마니아들이 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대니 구의 목표에 큰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연습도, 곡을 쓰는 데에도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한다. 이럴 때 해이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일흔이 되고, 여든이 돼도 열심히 뛰고 있는 연주자들을 가장 존경한다. 클래식 팬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 업계 일자리도 점점 줄고 있다. 보통 선생님, 오케스트라, 솔로이스트 세 분야로 가게 되는데,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뮤지션 적재 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싱어송라이터 겸 연주자인데, 더 열심히 해서 음악하는 사람들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배고픈 아티스트’로서의 시절도 있어야 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음악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하는 만큼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게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믿나?
    어느 누구보다 더 강하게 믿는 편이다.(웃음) 인생의 롤 모델이 몇 명 있다. 미국의 코미디언 케빈 하트Kevin Hart,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인데, 이들 모두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얘기한 사람들이다. 다른 이에게 내 꿈을 말하는 순간 자신감도 생긴다. 그리고 일단 스스로 뱉은 말이 있으니 더 열심히 살게 되고.(웃음) 그래서일까? “언젠가는 꼭 이 꿈을 이루고 말 거야” 하고 말한 것들이 신기하게 모두 이뤄지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스트라이프 패턴의 니트 톱은 마르니 바이 지스트리트 494 옴므, 1·4번 사진의 링은 트렌카디즘, 실버 네크리스와 2·3번 사진의 링은 쇼메 제품. 피어싱은 본인 소장품.